.한 선원이 있다. 그의 한쪽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당연히 다리를 전다. 매일 물을 길어 어느 여성에게 가져간다. 이 여인은 하루 종일 머리를 빗고 벌거벗은 몸으로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는 여자의 다리에 물을 뿌린다. 쉬지 않고 물을 뿌린다. 선원은 인어에게 물을 배달해주는 것이다. 기묘한 사랑 이야기다. 선원은 점차 자신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화를 내곤 한다. 이들의 사랑은 결정적 적수를 만난다. 매일 인어에게 나타나 피리를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버뮤다>는 선원과 인어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인어와 관련된 통상적 판타지와는 궤를 달리 한다. <버뮤다>엔 동화와 신화로부터 빌어온 모티브들이 사용된다. 그 모티브들은 기이하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있다. 인어가 사막 한가운데 살고 있다든가 반인반수의 괴물이 인어에게 연정을 품는다는 설정이 그렇다. 이러한 설정은 작품에 녹아들면서 뒤틀린 상징이 된다. <버뮤다>에서 인어 등 각 캐릭터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가 그들을 범상한 인간에 가깝도록 만든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들 캐릭터를 냉소적으로 만들고 어떤 면에선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버뮤다>는 음악의 사용이 효과적이다. 반인반수의 괴물이 인어에게 접근하면서 들려주는 피리소리는 황량한 <버뮤다>를 채우는 음악이 된다. 세상엔 이렇듯 기이한 사랑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김의찬)
버뮤다評論(0)